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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신체장애자로 한국 기부천사 1호가 된 류시문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장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1/14 [10:32]

[인물포커스] 신체장애자로 한국 기부천사 1호가 된 류시문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장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1/14 [10:32]

 

▲ [인물포커스] 신체장애자로 한국 기부천사 1호가 된 류시문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장 / 사진=한국적십자사 경북지사 홈페이지  © 더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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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최근 경북 북부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 진화 작업에 헌신적 구호 사업을 하고,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경북도민들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대책을 강구한 류시문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장의 인물소개를 위해 류시문 사장의 지인 이도수 교수와 인터뷰 했다.

 

: 교육계 인사이신 교수님께서 사회 사업 계통의 인사인 류지문 사장과 어떻게 교분을 트게 되었습니까?

 

: 사회사업가인 그 분과 직접 인연을 맺게 되기 이전에 좀 우회적인 관계일화가 있어요.

 

: 우회적인 관계일화라니, 어떤 사연의 일화인데요?

 

: 지금부터 7~8년 전쯤 대구팔공산자락 동화천변에 있는 나의 단골식당 고향식당이란 곳에서 옆 좌석을 차지하고 앉은 단체손님들과 우연히 의기투합되어 합석하게 되었어요.

 

: 평소에 안면 있는 지인들이었습니까?

 

: 아니요. 7~8명으로 구성된 3~40대의 타향 사람들이었어요. 자식 나이에 불과한 그 젊은이들은 교량 안전 검사 업무 수행 차 대구에 단체출장 왔다는데 팀장을 중심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수준이 높고 진지하여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여 엿들었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합석하여 술잔을 서로 주고받기에 이르렀어요. 이 지경에 이르면 으레 식대는 내가 다 부담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아내가 파수꾼 노릇을 하기 전에 화장실 간 틈을 타서 내가 쏜살같이 계산을 해버렸어요.

 

: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후회 하지 않으셨어요?

 

: 후회라니요. 그 다음 날 그 젊은이들이 내가 대구 명소라며 꼭 둘러보고 가라고 소개해준 팔공산 대한수목원에 가서 경내를 둘러보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전날 나의 후한 대접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시간이 없어 응하지는 못했지만 기분이 무척 좋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뒤에 알고 보니 류시문씨가 창업하여 운영하는 주식회사 한맥 도시개발 소속 사원들이더군요. 그런 우회적 인연 말고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4년쯤 지난 후였어요.

 

: 그때는 어떤 계기로요?

 

: 류시문 사장의 친형 되는 분이 교장을 지내신 분인데 나와 친교를 맺게 된 것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환을 하다가 매사에 의기투합이 되어 백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요. 그 분은 서울에 사시는데 자기는 내세울 것 없는 인품이지만 자기 동생은 자랑스러운 인재라며 나에게 인사시키러 대구로 보내겠다고 했어요. 이에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사양했어요.

 

: 그런데도 그 분이 끝내 교수님께 인사하러 오셨어요?

 

: . 내가 대구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명소 팔공산 대한수목원에서 만났어요. 첫 만남에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그를 보고 아연실색했어요. 그 분 형님이 나보다 5년쯤 연하이니 그 제씨인 그 분은 적어도 7~8세연하일 텐데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다니! 그런 내 눈치를 채고 자기 형제들이 자랄 때 가난에 쪼들려 불구가 된 사연을 얘기하다가 그 모든 역경을 딛고 성공한 증거물로 두툼한 책을 내밀더군요. 그 책을 대충 훑어보는데 그 분의 얼굴이 점점 더 크게 보이더니 마침내 큰 바위 얼굴처럼 보이더군요. 그런데 이분이 나에게 하는 말이 기상천외였어요.

 

: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

 

: 자기는 교장을 지낸 형님을 가장 존경하는데, 형님께서 대구에 가서 이도수 교수에게 인사드리고 무슨 도움이든 드리라고 명하셨다면서 무슨 일이든 시켜달라고 했어요.

 

: 그래서 어떻게 답하셨어요?

 

: 그 형제분들이 헤쳐 온 고난은 나의 경우보다 몇 배 더 험난했고, 그 분들이 이룬 업적을 큰 바위라 한다면 나는 자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에 내가 그 형제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들이 실천한 고상한 복수의 삶을 세상에 널리 알려 만인들이 본받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 ‘고상한 복수라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 삶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주시죠.

 

: 경북예천의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형제간에도 밥 한 숟가락이라도 서로 빼앗아 먹으려고 다투던 시절에 사고로 지체부자유자가 되어 살길을 찾으면서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보다 남에게 이로움을 끼치는 일을 하여 번 돈으로 남을 도우는 삶을 산 것을 의미하지요.

 

: ‘고상한이라는 말과 복수라는 말은 서로 교합이 자연스럽지 않는 것 같은데요?

 

: 그러기에 보통사람들이 행하기 어렵지요. 세상은 아귀다툼장이라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일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면 공익사업이지만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이면 공해사업이라 할 수 있지요.

 

: 하지만 일부러 남을 해롭게 하는 사업이 어디 있을 수 있을까요?

 

: 그럼 구체적 예를 들어 물어보겠어요, 4대강 보 건설은 공익사업이었어요, 공해사업이었어요?

 

: 유역주민들이 유익하다고 했으니 공익사업이었지요.

 

: 그럼, 4대강 보 해체사업은?

 

: 유역주민들이 해가 된다고 했으니 공해사업이었지요.

 

: 그럼 원자력발전소 해체작업은?

 

: 국민들이 반대하니 공해사업이지요.

 

: 그럼, 신라 젠, 옵티머스, 라임사업 등은?

 

: 국민들을 속여 일부 인사들이 덕을 보려고 했으니 공해사업이지요.

 

: 그럼, 류시문 이사장이 창립하여 운영한 한맥 도시개발사업은?

 

: 그 회사의 설립 취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제가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네요.

 

: 한맥 도시개발은 20여 년 전 우리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직후 대형건축물 안전관리가 절박하다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창업된 기업이지요. 따라서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익사업이지요. 류시문 이사장이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고도의 기술을 갖춘 토목안전진단, 시설물 유지관리 등을 성실하게 수행하기에 국민들로부터 신망 받고 있어요. 그러니 전형적인 공익사업이지요.

 

: 그럼 아까 말씀하신 고상한 복수와는 그분의 사업성공과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 어려운 환경에서 악전고투하여 큰 권력을 잡거나 큰 돈을 번 사람들 중에는 한때 자기에게 고통을 주었던 자들에 대한 보복심리에서 지독한 복수를 하는 예가 다반사이지요. 그러나 류시문 사장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온정을 베푸는 일을 많이 했기에 기부천사로 추앙받게 되었어요. 최근에도 코로나19 사태로 궁핍의 늪에서 허덕이는 경상북도 내의 각 시·군을 돌며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어요. 나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류시문 연하스승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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