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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감영은 왜 한성부에 있었을까?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서 발간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서 ‘조선시대 ‘경기’ 연구’ 발간

김창구 기자 | 기사입력 2019/11/29 [15:03]

조선시대 경기감영은 왜 한성부에 있었을까?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서 발간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서 ‘조선시대 ‘경기’ 연구’ 발간

김창구 기자 | 입력 : 2019/11/29 [15:03]
    조선시대 ‘경기’ 연구 표지


[더뉴스코리아=김창구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에서는 ‘서울 역사의 취약 분야’를 보강하고 서울 연구자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서울역사 중점연구’ 발간 사업을 2016년도부터 시작했다. 올해는 조선시대 성저십리와 경기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서울역사 중점연구 제6권은 조선시대 ‘경기’를 다룬 종합 연구서인 ‘조선시대 ‘경기’ 연구’다.

이 책에는 총 7편의 논문이 수록되어있는데, 조선시대 경기 재편과 위상의 변화, 조선시대 ‘경기’ 지역 목장 연구, 조선시대 경기감영의 설치와 변화, 조선 후기 서울-‘경기’ 지역의 성장과 물류유통구조, 조선시대 ‘경기’의 육로 교통, 조선 후기 ‘경기’의 왕릉체계, 조선시대 한강의 진도체계와 진선관리 등이다.

먼저 ‘조선시대 경기 재편과 위상의 변화’는 경기라는 공간의 구성변화와 그 위상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고려시대 존재한 경기라는 개념은 조선 초기까지 이어지면서 한양 주변을 지칭하게 됐다. 조선시대 내내 경기의 공간 영역은 유지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경기의 일정 지역이 특수화됐다.

한편 경기의 공간은 거점을 중심으로 몇 개의 영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했다. 지역 방위 체제를 의미하는 진관체제가 점차 변화하면서 몇 개 거점을 중심으로 진관 구역이 고착화됐다.

‘조선시대 ‘경기’ 지역 목장 연구’는 경기 지역에 설치된 목장의 의미를 추적했다.

국가 운영에서 말이 가지는 중요한 위상 때문에 조선은 건국 직후에 ‘경기’ 지역에 목장을 설치해 말의 수급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부분의 ‘경기’ 지역 목장은 오래되지 않아 폐지됐지만 한양과 양주에 걸쳐 세워진 전곶 목장은 몇 차례 폐지를 거치면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후 경기 지역 목장은 목장이 아닌 점차 거주지로 변모했다.

‘조선시대 경기감영의 설치와 변화’는 경기감영이 도성 내 위치하게 된 의미를 살펴보았다.

경기감영이 한성부 반송방에 위치한 이유는 조선의 국왕이 도성 주위를 감싸는 경기의 수장, 경기감찰사의 지속적인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관찰사는 경기를 맡아 관할하면서 도성을 지원하는 여러 업무를 수행했는데, 특히 왕릉 관련 해 국왕의 행차에 지속적 도움을 줬다. 뿐만 아니라 국왕은 지방의 농사 형편이나 제도의 시행여부를 파악할 때 첫 번째 기준을 경기로 삼아 경기관찰사를 자주 불러들여 상황을 물어보았다.

‘조선 후기 서울-’경기‘ 지역의 성장과 물류유통구조’는 조선 후기 새롭게 형성된 경제 구조 속에서 경기 지역이 가지는 물류 공간의 의미를 추적했다.

조선 초기 ‘경기’ 지역은 왕실을 부양하고 정부 관서의 경비를 조달하는 물적 토대로서 그 위상을 재구축했다.

또한 이 지역은 서울로 인구와 물자가 이동하는 교통의 요지로 왕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국가적 물류의 유통을 핵심으로 하는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경기’의 육로교통’은 ‘경기’ 지역에 설치된 역원 등 교통거점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설치된 교통로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경기’지역에 위치한 逆道에는 일찍부터 중앙의 경관이었던 ‘察訪’이 파견됐고 영서역과 양재역은 중앙의 직접 관리 대상이 됐다.

역이외에도 院, 津渡 등 다수의 교통 거점이 이 지역에 분포했는데, 院은 교통로상 위치한 공공 편의시설로 역과 역사이에서 교통로를 잇는 중요한 지점이다.

‘조선 후기 ‘경기’의 왕릉과 관리체계’는 조선시대 경기 즉, 현재의 서울 경내로 포함된 당대의 경기에 소속된 지역의 왕릉 현황을 파악하고 역할과 관리실태를 파악했다.

이 지역에 분포된 왕릉은 모두 8개로 관리를 위해 매년 정해진 일자 혹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제향을 올렸다.

이들 왕릉은 도성과 너무 가까워도 안됐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됐다. 이는 도성에 가까우면 도성의 발전을 저해할 여지가 있었고 너무 멀면 관리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한강의 진도체계와 진도 관리’는 조선시대 한강의 진도 관리 체계와 진도의 변화상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했다.

1414년 임진도, 양화도, 한강도 외에 민간인이 임의로 통행했던 한강의 노도, 광진, 용진 등의 津渡를 정부가 관장해 국경을 지키는 지점으로 활용했다.

조선 전기에는 도승·도의 관리책임자)을 두어 관리했고 17세기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와 남한산성이 설치되면서 진도체제는 계속 변화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선시대 ‘경기’ 연구’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 등에 무상으로 배포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구입을 원할 경우 신청사 시민청의 서울책방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책값은 1만원이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그간 공간 영역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연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경기’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서울역사 중점연구총서를 발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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