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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금태남 금경연 화백기념관장, 팔순에도 왕성한 집필과 사회활동 참여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6/05/18 [15:21]

[인물포커스] 금태남 금경연 화백기념관장, 팔순에도 왕성한 집필과 사회활동 참여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6/05/18 [15:21]

▲ [인물포커스] 금태남 금경연 화백기념관장, 팔순에도 왕성한 집필과 사회활동 참여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 편집부] 2025 대한민국 뉴리더100인 등재를 위해 더뉴스코리아 편집부에서 금태남 수필가를 만나 그의 다양한 삶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최근에는 자유대한민국희망연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공헌상을 받았고, 대구시 행복진흥원과 한국교육혁신포럼에서 주관한 사랑의 편지쓰기공모전에서 팔순에 쓴 어머님 전상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 사람의 삶은 결국 공동체와 문화 속에서 완성됩니다

금태남수필가는 공직자와 지방의원, 문인, 사회운동가의 길을 걸으며 지역사회와 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왕성한 집필 활동과 봉사를 이어가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인 부친 금경연화백의 예술정신을 계승하며 문화예술의 가치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다음은 금태남 수필가와의 일문일답이다.

 

Q1. 공직자와 지방의원, 수필가로 다양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신다면 어떤 의미로 남아 있습니까?

A. 저는 늘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공직자로서 지역행정을 위해 헌신했고, 이후에는 수성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행정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수성구청 총무국장과 행정관리국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직사회가 시민들에게 더욱 신뢰받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또 월남전에 참전하며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한 일은 제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삶의 소중함과 나라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고, 이후 어떤 일을 하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베트남 참전 국가유공자들과 교류하며 국가를 위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2. 최근에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문학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A. 문학은 제게 삶의 기록이자 마음의 치유입니다. 저는 오랜 공직생활 속에서도 늘 글을 가까이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지역의 이야기를 듣고,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을 글로 남기는 것이 삶의 큰 위안이었습니다. 특히 팔순이 넘어 쓴 어머님 전상서는 제 삶의 진심이 담긴 작품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 그리고 세월 속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회한을 담아낸 글인데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학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화려한 표현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앞으로도 제 삶의 경험과 지역의 역사, 가족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것이 후손들에게는 작은 정신적 유산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3. 선친이신 금경연 화백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기억을 말씀해 주십시오.

A. 아버님은 정말 천재적인 예술가셨습니다. 일본이나 유럽 유학 경험 없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거듭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얼마나 뛰어난 화가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양파와 능금’, ‘붉은 벽돌의 건물같은 작품은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선 감각과 뛰어난 데생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33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늘 가슴 아픕니다. 더 오래 사셨다면 한국 서양화단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짧은 생애 속에서도 교육자와 예술가로서 뜨거운 삶을 사셨고, 그 정신은 오늘날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는 것도 단순히 가족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근대미술의 정신과 예술혼을 후대에 제대로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기념관을 찾는 젊은 학생들이 작품을 보며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 대구교대 평생교육원 자서전교실 일행이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을 견학했다. 좌측끝이 금태남 작가  © 더뉴스코리아


Q4.
한 가문 전체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술적 전통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저는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 환경과 정신의 계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안은 어려서부터 그림과 글, 음악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버님의 예술적 감성과 철학이 자녀들과 손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제 장녀는 프랑스에서 예술조형학 박사학위를 받고 활동하고 있고, 손주들과 조카들 역시 미술과 문학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들이 예술을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품격과 정신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손들에게 늘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다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문이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가족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Q5. 팔순이 넘은 지금도 지역사회 활동과 봉사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후배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십니까?

A. 요즘 사회를 보면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 가치와 인간관계는 점점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후배 세대가 경쟁만을 위해 살아가기보다 사람의 도리와 공동체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나이가 들어도 배움과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와 문학 공부를 계속했고, 지금도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늙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꿈과 열정을 잃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저는 문학과 문화예술, 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작은 희망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후손들에게 끝까지 성실하고 따뜻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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