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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의 저자 최 광 소개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19/03/04 [11:44]

[황영석 칼럼]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의 저자 최 광 소개

김두용 기자 | 입력 : 2019/03/04 [11:44]

신개념 국가경영포럼 회장 황영석

 

 

▲ 자문위원장     ©더뉴스코리아

인물은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가령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어온 링컨의 경우도 인종주의를 배격한 노예해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과정에서 독선과 독단도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와 정 반대로 현재의 시대적 상황으로 과거를 판단하니 당연히 단죄가 되는 경우가 이승만, 박정희 등의 경우이다.

 

 

미소를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에서 소련연방의 분열로 인한 탈 냉전시대라는 변화된 시대에 걸 맞는 변화된 사상과 국가관이 필요하듯이 보수우파가 지향해야 할 노선을 잊은 채 을 보수우파 노선의 방황기가 국민들에게 신물을 내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는 탈냉전시대를 맞이했지만 국내적으로는 북핵이 존재하는 한 안보와 경제라는 두 축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미북회담 이후로 안보와 경제라는 두 축 에서 안보는 식상한 메뉴가 된 상황에서 대한민국과 자유한국당의 내일을 설계하기 위해 우리시대인 오늘에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 사회는 변화해야 한다. 특히 우리 정치는 바뀌어야 한다. 그것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새로운 사람을 진정으로 갈망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당내에서 친박과 비박이 엄존하여 있으나 이런 낡은 정치를 혁파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희망의 정치를 열어갈 수 있고, 보수우파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혁신비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 심지어 친노의 인맥이나, 더민주당의 공신도, 탄핵시 헌법재판관도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당내 불란만 가중시킬 수 있으며, 보수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착안한다면 정치전문가가 아닌 경제전문가로서 자유한국당을 효율중심으로 변혁시킬 검증된 인물이 필요하다.

 

먼저최 광 전 장관 을 소개하기에 앞서 서투른 펜으로 이분을 소개하게 되어 가슴 벅차다.

 

최 광(崔 洸), 그는 누구인가? 그의 값진 인생이라는 삶의 궤적에 따라서 전개해 본다면

 

먼저 김영삼(泳三) 전 대통령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그 이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의 석좌교수인 최 광(崔 洸)은 학자로서, 행정가로서, 탁월한 경제이론과 현실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경제전문가이다. 특히 국가예산과 조세정책 분야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재정학 분야의 거두(巨頭)로 대한민국 경제학계의 중심적 인물로 우뚝 서 있다.

 

▲ [황영석 칼럼]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의 저자 최 광 소개     © 더뉴스코리아



 

짙푸른 南海, 뱃고동 소리 울리는 釜山에서의 학창시절

   

전 장관은 동주대학 부학장을 지낸 최엽종(崔燁宗)씨의 11녀로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에서 태어나, 고향 남해에서 다정초등학교를 마치고, 진주중학교를 거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교시절 오륙도를 바라보면 우리나라 제1의 관문을 넘나드는 배들의 뱃고동소리가 가득한 항도 부산에서의 생활이 전 장관의 꿈을 키우는 데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가족들은 22여 년 전 고향인 남해를 떠나 부산 사하구 괴정에서 지금껏 살고 있는데 이제는 부산이 가족 모두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전 장관은 지금도 청조경제포럼, 청마회 그리고 부산대학교 경제연구소 자문위원 등 부산과 관련 모임을 주도하고 있으며, 부산일보 등에 부산지역 고정칼럼니스트로서 제2의 고향인 부산에 대해 애정을 듬뿍 쏟아오고 있다.

 

 

교수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의 길을 행해서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전 장관은 196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법대와 상대의 선택을 두고 고민하던 전 장관은 보릿고개 시절을 몸소 체험했기에 한 국가를 살리는 길은 역시 경제문제의 해결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에서 상과대학을 선택했으며, 졸업 후 한국개발금융주식회사(장기신용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경제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시야와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전 장관의 이러한 청운의 꿈은 학비, 생활비, 피복비 등 일체를 지급해 주는 포드재단(Ford Foundation)의 장학금을 받음으로 가능해져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73년부터 그렇게 시작된 유학생활은 두 개의 석사학위(경제학 석사 및 공공정책학 석사)와 하나의 박사학위(경제학 박사)를 마치는 과정에서 국내의 가정과 지인 등으로부터 단 한 푼의 학비도 가져다 쓰지 않고 순전히 포드재단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업을 시작하고 마무리하게 되었다.

 

나라가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 모두가 고르게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시작한 유학생활은 마침내 1979년 경제학, 특히 공공경제학 분야에 있어서 미국 내에서도 유명한 메릴랜드대학교(University of Maryland)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시절 자신이 흘린 땀에 감사하는 것은 당시의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해서 미국에서 출간된 비교경제성장에 관한 제이론(Theories of Comparative Economic Growth)은 미국 및 영국 등 유수(有數)의 대학교에서 대학원 교재로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중국어로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은 박사학위 제목만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다.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모교인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전임강사로 시작한 전 장관은 와이오밍대학교(University of Wyoming)에서 경제학과 교수로서 새 출발을 했다.

 

 

제자들에게 가장 중시하는 덕목

   

전 장관은 교수로서 학생지도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사람이다.

 

전 장관 밑에서 공부한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학문적으로 명쾌하고 알기 쉽게, 인간적으로 편안하게 지도해 준대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전 장관이 강조하는 점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고 실력 있는 학생의 교육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를 놓고는 이()보다 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사람은 모름지기 의리라는 신의를 버리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전 장관은 매학기 종강 시에 제자들에게 특별강연을 한다. 경제학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의리에 관한 강의이다. 그리고 나서야 수업을 마친다. 이는 전 장관이 지난 15년간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는 인생강의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제자들은 의리라는 제목의 마지막 특강을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이를 삶의 근본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최 광(崔 洸)의 교육철학은 그가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으로서, 또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서 그의 재직 시의 잊을 수 없는 처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전 장관은 학생들에게 의리를 강조하면서 이를 스스로 실천하는 인물이다. 지난 1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국무위원들이 김대중 당선자 및 측근에게 찾아가 업무보고와 함께 소위 눈도장 찍기에 여념이 없을 때, 전 장관은 부하직원을 시켜 보고하게 하는 등 자신의 임명권자인 김영삼 대통령과의 신의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른바 DJ정부라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총리인준 문제로 당시 국무위원들이 제때 퇴임을 하지 못할 때 소신껏 퇴임식을 함으로써 신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평을 들었다.

 

또한 19996월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할 때에도 많은 전직 국무위원들이 현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동행하는 것을 꺼려할 때,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한 의리라면서 권력의 이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온 전직 각료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 방문을 직접 주선하고 동행한 일은 그의 성격의 일면을 잘 말해주고 있다.

 

 

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

 

유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Marshall)은 이런 말을 했다. 모름지기 경제학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은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다. 따뜻한 가슴이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인간적인본적인 사고가 기본이다. 전 장관은 다정다감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태어난 곳이 다정이라서 일까? 그가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이임식 후 직원들과 이별하는 자리에서 전 직원이 모두 울음바다가 된 일은 지금도 직원들 사이에 두고두고 기억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재임 중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보건복지부 직원들의 생일과 그 직원들 부인의 생일까지도 일일이 직접 챙겨주었는데, 뜻하지 않게 장관의 친필 생일카드를 받고는 가보로 대대로 전하겠다고 하는 부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전 장관은 윗사람 모시기보다는 아랫사람을 배려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는 사람이다. 결코 사치스러운 경우는 없으나 옷을 멋있게 잘 입는다는 전 장관, 장미꽃 중에서도 장미를 좋아한다는 그의 가슴속의 색깔은 무슨 색일까? 궁금하다.

 

 

한국 경제발전의 산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대학 교수로서 미국에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전 장관의 뇌리에는 조국을 떠나올 때의 결심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전 장관은 귀국을 결심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경제발전계획의 산파역을 맡아 국가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던,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모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위원으로 초빙되어 국가 경제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재정통계자료집, 국가예산과 정책목표, 한국세제의 주요 정책과제와 개선방향 등 어떻게 하면 국가살림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의 4년간의 연구실천 노력은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 본격적으로 계속되었다.

 

귀국 후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 낸 훌륭한 연구업적과 정부의 경제정책 자문활동은 우리 정부가 1986년 조세의 날에 정부수립 후 재정분야 학자 그것도 40세 이전의 소장학자에게 최초로 산업훈장을 수여함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전 장관의 실력은 영국 외무성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아 요오크대학교(University of York)에 명예객원교수로 초빙된 데서도 잘 입증되고 있다.

 

 

국가예산과 조세정책의 경제전문가로서

 

1981년 귀국이후 18년간 저술한 책과 보고서는 80여권에 달하고, 전문적 학술논문은 140여 편에 이르며, 신문과 잡지에는 420여회 기고한 바 있다. 또한 매년 쓰는 원고 분량은 책자 2권에 해당하는 200자 원고지 4천매에 달하고 있다. 또한 매년 영문으로 한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학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길은 글을 많이 쓰는 것이다"라는 그의 학문적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며, 이는 관련 학계의 전문가 모두가 공인하고 있다.

 

1992년 매일경제신문사가 전국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를 대상으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간 발표한 논문 수를 조사한 결과에서 21편의 논문을 발표, 23위와 1편씩의 근소한 차이로 4위를 기록하였으며, 연구과제부분에서는 1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이러한 연구결과 수치는 전 장관이 평가기간 4년 중 1(1988~1989)은 영국 요오크(York)대학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하여 다른 교수들보다 1년의 실적치가 적은 기간임을 생각한다면 가히 대단하였다.

 

 

한편 전 장관은 1937년에 설립된 국제재정학회(IIPF) 회원으로도 매년 전 세계를 누비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으며, 그 중 1988, 1994, 1996년에는 국제재정학회 연차총회학술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특히 1999년 여름에는 세계 40여 개국 1천여 명 회원의 직접 투표를 통해 국제재정학회 상임운영이사에 선출됨으로서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대한민국의 재정학자로 확실하고 명실상부한 위치로 격상되어 부상했다.

 

국가예산과 조세정책에 관한 국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장관의 위상은 7권의 한국재정 40년사와 6권의 한국조세정책 50년사를 책임지고 만들어 낸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론을 실천하는 행정가로서

 

최 광(崔 洸) 전 장관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경제학자인 교수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1981년 귀국 후 10여 년간은 경제학자로서 연구 활동에 전념한 시기였다면,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는 행정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조세연구원 설립의 실질적 산파역을 맡았으며, 탁월한 연구행정능력을 인정받아 1995년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차관급)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원장 재임 중인 1997년에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의 보건복지부장관으로서 발탁되어 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경험 외에도 한국의 유수의 학회인 한국조세학회, 한국공공경제학회 등의 회장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우리나라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모인 신자유포럼(국회의원, 언론사 논설위원, 각 분야 학장 등 전문가들의 모임)의 회장으로서 남다른 관리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소신 있게 개혁의 길을 걸어온 경제이론가로서

 

전 장관이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으로 발탁된 것은 기존의 관례와 다른 특이한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국책연구원 원장은 교수보다는 관료, 정치인 또는 연구소 자체 내의 전문가가 맡는 경우가 지배적이었는데 전 장관은 국내 귀국 후 이룬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국가예산과 조세정책에 관한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에 선임되었다.

 

선임이 발표되었을 때 학계 관계 모두 이구동성으로 최적임자가 선택된 것으로 평가했다.

 

각종 언론기관으로부터 합리적인 성격이지만 일단 방향이 세워지면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하다는 평과 함께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공()과 사()의 구별이 뚜렷하다는 평을 듣고 있던 전 장관은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에 취임하자마자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그가 그 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당시 설립된 지 3년밖에 안된 한국조세연구원을 국내 19개 사회과학 관련 국책연구기관 중 가장 적은 인력으로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내는 최우수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

 

전 장관의 이러한 원장으로서의 탁월한 업적은 감사원이 우리나라 전체 50여개의 국책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교평가 감사에서 한국조세연구원을 효율적인 연구기관의 모범사례로 선정(1997.4.30)되는 데서, 그리고 타 연구기관은 물론 민간 대기업들이 한국조세연구원의 각종 제도를 모방한데서도 잘 증명되고 있다.

 

한편 그가 보건복지부장관 재임 시에는 이익집단들의 횡포로 중심이 흐트러져 있던 보건복지부에 원칙을 강조하는 소신 장관으로서의 이미지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모 직능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간지 광고를 통해 장관을 비방하는 압력을 가한 것에 끝까지 굴하지 않고 대항하여 퇴임직전 그 단체로부터 사과문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그는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유연함과 이를 뒷받침하는 대화와 타협 능력은 보건복지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를 몇 단어로 요약하여 표현한다면 참신하고 개혁적인 경제전문인 제대로 된 우리 사람

 

최 광(崔 洸) 전 장관 그는 한 평생을 경제학자로서 그리고 행정가로서 외곬 차게 살아온 그의 삶은 한마디로 참이슬처럼 청렴하게, 그리고 의리를 중하게 여기며 따뜻하게 살아왔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인재가 빈곤한 상태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으면 인간적이지 못하고, 인간적이기는 하나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본다.

 

지금은 무한경쟁시대로서 국가와 당의 사회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람이 참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인격적이고 지조가 중시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울러 경제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경제학자, 국책연구원 원장, 보건복지부장관으로서 쌓아온 최 광(崔 洸)의 경험은 참으로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과 자유한국당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3.1100주년을 기념하여 허물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의 부활을 기원하며, “대한민국 경제 5% 성장을 위한 노력으로 최 광교수가 2018년에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를 집필했다.

 

이 책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과 초석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과 정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서부터 농업, 조세, 노동, 복지, 부의 분배뿐만 아니라 케이팝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또한 방대한 부분에 대하여 국내에서 활동하는 약 19분의 경제석학들이 논문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끝으로 (최 광)(정기화)(박동운)(송원근)(안재욱)(박동운)(유정호)(김이석)(권혁철)(김영용)(이영환)(김정호)(남상우)(안재욱)(김승욱)(박동운)(황인학)(정인교)(조동근) 등 한국경제의 이론을 주도하는 교수이자 석학들의 참여한 책을 소개하는 행운에 감사를 드린다

 

▲ [황영석 칼럼]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의 저자 최 광 소개     © 더뉴스코리아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뉴스코리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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